고잉그레이: 흰머리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이야기
한국에서 살 때는 백발이라 부르던 것이 이제는 ‘고잉그레이(going gray)’라고 불린다니, 참 새롭고 이쁜 표현이다. 염색을 멈추고 자연스러운 흰머리로 살아가는 지금의 나에게 이 단어는 더없이 마음에 든다. 염색을 하고 살던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뉴질랜드로 오기 전까지 나는 꾸준히 염색을 했다. 나이가 들수록 흰머리가 자라나는 속도가 빨라지고, 염색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게 부담스러웠다. 염색을 제때 하지 못하면 불안해지고, 사람들이 내 흰머리에 대해 뭐라고 할까 두려워지곤 했다. 그런데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내가 여기까지 와서도 남의 시선을 생각하며 염색을 해야 할까?”
그렇게 염색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염색을 멈춘 지 1년 8개월이 지났고, 거울에 비친 흰머리 가득한 내 모습을 점점 더 받아들이고 있다. 염색을 멈추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하고 싶지 않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뭐라고 하더라도 내 선택은 변하지 않았다.
염색을 멈춘 이유
사실, 한국에 있을 때도 이미 염색을 멈추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헤어라인 쪽에 검은 머리 대신 흰머리가 올라오면 과감히 염색을 멈추리라 다짐했었다. 다행히 내 친구들은 “지금 지저분한 시기만 잘 버티면 괜찮아질 거야”라며 용기를 주었고, 이 말을 믿으며 버틸 수 있었다. 내 남편도 종종 “염색 한번 할래?”라고 조심스레 물어보곤 했지만, 내가 염색을 다시 할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혹시나 싶어 물어본 것이었다.
가끔 누군가는 “와이프 염색할 돈이 없어서 안 하는 거 아니냐”는 농담을 남편에게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염색을 하지 않는 이유를 분명히 말했다. 염색을 하고 나면 두피가 민감해지고, 시간이 많이 들고, 무엇보다 내 흰머리를 숨기기 위해 계속 염색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 싫었다. 이런 고충을 이야기하면 이해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실 나는 그들의 이해를 바라고 염색을 멈춘 게 아니었다. 내 결정에 대한 자신감과 당당함이 나를 지탱해줬다.
고잉그레이, 나를 사랑하는 시간
사실, 내 흰머리는 유전이다. 엄마도 젊을 때부터 흰머리가 많아 염색을 일찍 시작하셨지만, 머리숱은 풍성하셨다. 그 덕에 나도 머리숱은 많아서, 염색을 멈춘 시간에 다른 데 더 시간을 투자하기로 했다. 피부 관리에 시간을 들이고, 옷을 좀 더 신경 써서 입는 식으로 말이다. 염색 대신 새로운 방식으로 나를 가꾸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가족의 반응
하지만 내 ‘고잉그레이 선언’에 그리 탐탁지 않아 하는 단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내 아들이다. 가끔 “엄마 흰머리 뽑아줄까? 엄마 염색 안 해?”라고 묻곤 했던 아들이 이제는 점점 나의 흰머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물어보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뉴질랜드에서 흰머리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블로그에 적어본다. 과거에는 남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에 맞추려 했지만, 이제는 내 안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삶을 선택했다. 이 자연스러운 모습이 바로 나다. 고잉그레이는 단순히 흰머리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과정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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